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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SSC MUSIC : 30TH TRACKLIST





안녕하세요. 슬로우스테디클럽 입니다. 최근에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가 있는데요, 바로 폴 토마스 앤더슨, PTA 라고도 불리우는 미국 감독의 '데어 윌비 블러드' 라는 작품입니다. 1927년 발간된 소설 <석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을 벌어들이는 석유업자로 등장하는데, 작품 속에서 그와 끊임없이 갈등의 양상을 보여주는 대립적인 인물은 성실한 기독교 신자인 일라이 선데이 입니다. 이 둘의 팽팽한 신경전과 물리적 출동은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을 관통하며 이루어집니다. 보통 인물간의 대립은 주로 반대되는 성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 둘은 캐릭터만 다를 뿐이지, 동일한 물질적 욕망을 소유하고 있고 그로 인해 충돌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대립과는 사뭇 다릅니다.





 


극중에서 다니엘은 괴팍한 성격과 벌어들이는 만큼의 물질적 욕망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에 반해 일라이는 마을에서 신임을 얻고 있는 교회의 신실한 전도사이자 신을 자신의 영혼으로 불러들여 사탄을 쫓아 내기도 하는 다소 사이비스러운 양상을 보여주는 종교인 제3계시교의 열렬한 신자입니다. 그는 겉으로는 종교의 우아함과 품위와 지성미를 갖춘 사내이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물질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고군분투 합니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일라이에 비해 다니엘은 상대적으로 몰지각하지만 솔직한 인물, 비사회적이지만 인간적인 인물로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니엘과 일라이의 욕망은 감정의 표출을 넘어서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고, 서로 헐뜯는 것을 넘어서 분노 표출이 자신의 핏줄인 가족에게로까지 고스란히 전달 됩니다.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의 양상을 보여주는 두 인물에 대해 주변 인물들은 전혀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이 부분 역시 철저히 관객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놓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것으로 예상 되네요. 영화에서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가 표출되는 부분은 오직 석유의 생산에 관하여 금전적 이득을 취할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있는 자리에서 뿐만이죠. 이렇듯 각자의 방식으로 두 인물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선동하기도 합니다.

 



<영화 데어 윌비 블러드의 한장면>



제목 '데어 윌 비 블러드' 직역하면 '그곳에 피가 있을 것이다.' 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석유처럼 분출된 인간의 욕망을 함유한 뜻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극중에서 잠시 다니엘의 잃어버린 친동생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다니엘은 온화하기도 하며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혈육에 관한 집착도 보여주며 욕망을 솔직하게 노골적으로 분출시키는 것과는 다르게 사랑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진정 인간적이라 말할 수 있는 성향도 나타납니다. 다니엘과 일라이의 점점 치닫는 갈등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 짓게 될까요? 다른듯 하지만 결국은 같은 인간의 욕망. 그러한 욕망의 충돌. 이렇게 욕망은 결국 피를 부르게 된다는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저는 이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집중할 수 있었던 요소로 음악을 꼽고 싶은데요. 이 음악을 누가 디렉팅 하였는가에 대해 살펴 보던 중 바로 라디오 헤드의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Paul Thomas Anderson And Jonny Greenwood>




<Jonny Greenwood & London Contemporary Orchestra Boiler Room Live>



폴 토마스 앤더슨과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는 데어 윌비 블러드를 통하여 영화와 음악의 앙상블이 관객에게 깊은 몰입도와 뇌리를 스치는 것이 아닌,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극장안 또는 관객이 앉아 있는 의자 주변을 계속해서 멤돌게 하는 은은한 여운을 그들의 의도에 맞게 잘 구현해낸 훌륭한 작품임이 틀림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영화가 끝난후에 영화 속 특정 음악을 통해 그 영화를 떠올려내곤 하는데요, 아마 여러분들 중 대다수가 이러한 경험이 있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들은 모두가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불규칙적인 음렬과 우연 맥락 안에서 겉도는듯한 멜로디와 화성들은 음악이라기보다 오히려 소음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조니 그린우드는 이러한 소음들과 클래식을 뻔뻔하게 병렬 배치 함으로써 관객의 집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내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집중을 이끌어 낼까요? 우선 데어 윌비 블러드의 첫 장면에선 광산을 한번 비춰주며 오싹한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서부 개척시대에 처음엔 광부로 일하던 다니엘의 모습을 대사없이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관객을 관찰자의 입장으로 만들어놓은 후에 오싹한 음악으로 그의 삶 자체가 어떠할지 힌트를 처음부터 던져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예시로 1980년 개봉한 공포 스릴러 작품 중 최고의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의 오프닝 씬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호텔을 향해가는 잭 토렌스의 가족이 탑승한 차를 카메라가 저 멀리서 비추고 음산한 음악이 계속해서 흘러나옵니다. 알수 없는 기괴한 공포에 홀리는 듯한 분위기와 동시에 어디까지 깊숙히 들어가는지 알수 없는 불안감, 넓은 대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차량(인간)의 모습은 초라하고 나약해보이기까지 합니다.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오프닝 시퀀스 역시 음악과 함께 세기말의 우울하면서도 신비로운 지구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리들리 스콧의 연출력 역시 지금까지도 공상과학 영화의 최고로 손꼽히게 된 역할을 톡톡히 해낸것으로 유명하죠. 여기서 제가 열거한 세가지 작품 모두 오프닝 씬에서 음악과 함께 영화 전체의 분위기나 맥락을 예상해볼 수 있는 힌트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 오프닝 시퀀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오프닝 시퀀스>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오프닝 시퀀스>




앞서 말씀드렸던 영화들의 오프닝은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영화 전체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아울러 인물의 깊은 감정의 심연에까지도 힌트를 준다는 점인데요. 다시 말해서 음악을 통해 그것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음악도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면 어떤 것이든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춤이나 그림, 사진, 건축 모든것들이 말입니다. 서론이 너무나 길었던 것 같네요. 오늘은 영화안에서 언어의 관점으로 음악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데어 윌비 블러드를 보며 단순한 서사가 아닌, 인물의 심층적 내면과 스토리 내의 역사적 배경의 은유적 표현, 관객의 집중을 유도하는 장치로써의 역할 등을 하게 됨으로써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이 영화에서 지니는 의미와 이를 통하여 영화를 어떻게 더욱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보았고 언어적 기능을 위해 불규칙적이고 불협화음적인 음악들 사이에 뻔뻔하게 브람스의 클래식을 삽입하는 등의 모습을 보고 가장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트랙리스트에서는 좀 뻔뻔해져보고 싶었습니다. 트랙리스트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에서 리듬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조용하고 잔잔한 네오 클래식과 앰비언트 트랙들로만 구성을 해보았습니다. 특히나 서울숲 매장의 차가운 분위기에서 이런 음악들로 어떤 분위기가 연출될지도 궁금하였고, 어중간한 것 보다 차라리 음악 마저도 완전 미니멀하게 한번 가보자 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어 차갑고 잔잔하게 가보는것도 좋은 시도인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정해진 리듬이 없는것은 곧 청자들의 감정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가장 좋은 아웃라인이며, 마치 영화의 열린결말과도 같다고 느껴졌고, 그러한 열린 결말처럼 정해진 길이 아닌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로 가득 차 있지만 꿋꿋히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저희의 모습과도 비슷하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현대 음악가인 Jóhann Jóhannsson (요한 요한슨),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Ólafur Arnalds (올라퍼 아르날즈), John Cage (존 케이지), Arvo Pärt (아르보 패르트) 등의 아티스트들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번 트랙리스트는 샤워 하실때나 잠들기 전 또는 명상의 시간을 가지실때도 듣기 좋은 편안한 셋입니다. 재미있게 잘 들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Max Richter>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클래식 작곡가 중 한 명인 막스 리히터(Max Richter)는 1966년 독일의 하멜린에서 태어났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의 베드포드로 넘어와 그곳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내게 됩니다. 영국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을 졸업하고, 이후 이탈리아 피렌체로 건너가 유명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의 제자로서 클래식과 전자음악을 익혔고, 졸업 후엔 컨템포러리 클래식 앙상블인 <피아노 서커스>를 조직하여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10년간 피아노 서커스 팀원들과 일하면서 Arvo Pärt, Brian Eno, Philip Glass, Julia Wolfe, Steve Reich 등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작품 다수를 연주하였습니다. 또한 Decca/Argo 레이블에서 5종의 음반도 발표했다. 그는 2000년 초반부터 기존 클래식에 일렉트로닉을 가미한 앨범 <Memoryhouse>(2002),<The Blue Notebooks>(2004), <Songs from Before>(2006)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미니멀리즘 사운드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우뚝 서게 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매니아층과 팬층을 보여한 명실상부한 작곡가로 그 명성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Max Richter [Memoryhouse], 2002>




컨템포러리 클래식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막스 리히터의 데뷔 앨범 [Memoryhouse] 는 2002년에 릴리즈 되었습니다. 잔잔한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어딘가에선 나레이션이 등장하여 마치 영화속의 한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며, 또 어딘가에선 전자음이 섞인 실내악이 등장하여 일렉트로니카인지 네오 클래식인지 구분이 안되게끔 혼란이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게 진짜 크로스오버의 매력이 아닐까요? 어딘가 모르게 애매모호하면서도 일관성이 있는 그런 분위기 말입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트랙들 중 'Sarajevo', 'November', 'Arbenita', 'Last Days' 는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분쟁을 다루고 있으며, 'Laika 's Journey' 와 같은 트랙은 그의 어린시절을 다루고 있다고 하네요.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점은, 그의 음악 세계에선 개인과 사회,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역사적 비극을 개인의 비극으로도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영국에서 보낸 어린시절의 이야기와 유럽 동남부에 위치한 먼 국가의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과연 그가 어떠한 사유의 변증법적 논리를 통해 이러한 음악적 언어를 이 앨범에서 구축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해지네요. 




<Max Richter [The Blue Notebooks], 2004>



2년 뒤 새로운 앨범으로 돌아온 막스 리히터는 어떤 언어를 가지고 등장하였을까요? 이 앨범에서 그는 프란츠 카프카와 폴란드의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멸한 불안과 절망, 그로 말미암아 귀결되는 니힐리즘의 영향을 받고 체스와프 미워시가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하에 유대인 말살에 동조를 〈불쌍한 기독교인들 게토를 바라보네(Biedny chrześcijanin patrzy na getto)〉라는 시와 〈피오리 광장(Campo dei Fiori)〉이라는 두편의 시를 통해 고발한 점과 당시 나치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던 폴란드의 시대적 상황, 인간의 존엄성을 갈기갈기 짓밟아 놓은 당시의 시대상을 통해 아마 여러 방면으로 깊은 고뇌의 시간을 가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앨범은 그리하여 이라크 전쟁에 대한 그의 항변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앨범이며, 그가 영향을 받은 문학가와 문학가가 처한 시대적 상황 등이 중첩적으로 맞물려 더욱 깊은 심연속에서의 고뇌를 표현했다는 점에서 전작보다 더 무게감 있고 깊이가 있어진 점을 전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저는 역사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도 배울수 있지만, 나치 정권하에 있었던 모든 국가에서는 아마 정상적인 인간 행위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유대인을 숨겨줬다는 것이 들통나면 그 일가족들이 몰살 당하기도 하였으니 이런 반인륜적 행위를 일삼은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의 극단전인 몰락을 통해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비극적인 역사들을 숨기고 더이상 피할것이 아니라, 스스로 되뇌이고 기억하며 눈앞에 마주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막스 리히터도 자신의 고뇌를 음악적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요? 물론 이러한 장치가 없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하겠지만 말입니다.




<Max Richter [Songs From Before], 2006> 




<Max Richter [Vivaldi - The Four Seasons Recomposed By Max Richter], 2012>




<Max Richter [Sleep] - Dream 3, 2015>



직역하자면, '그 이전으로부터의 음악' 이라는 타이틀로 돌아온 막스 리히터. 이번엔 그는 영국의 소프트 머신의 멤버 존 와이어트가 낭송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보고 영감을 받아 과거를 추적하는 내용을 담아 음악으로 표현해냈네요. 막스 리히터의 음악 세계를 우선 접한 후에 음악을 들으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바라보게 할 것 인가에 대한 고민이 잘 느껴질 정도의 소울이 늘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살펴봐온 결과 그는 대게 역사나 인문학을 통하여 영감을 주로 받는 듯 하네요. 어떤 행보를 밟아 왔기에 이러한 음악적 언어를 구축하게 되었는지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막스 리히터의 개인적인 노력도 있었겠지만, 그가 받았던 교육이나 가정 환경에도 분명 영향이 있었을 것 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음악 교육에 있어서 좀 더 이상적이고 다른 예술 작품들 속에서 더욱 깊이감 있는 음악의 역할로 자리잡기 위해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그와 같은 현대 음악가들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 연구해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 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막스 리히터의 최고의 걸작을 2012년과 2015년에 각각 발표한 [Vivaldi - The Four Seasons Recomposed By Max Richter] 과 [Sleep]을 꼽고 싶습니다. 이 앨범들의 타이틀에 아주 간략하게 모든것이 함축되어 있죠. 전자는 말그대로 비발디의 사계를 전부 해체한 후에 그의 스타일로 재작곡한 앨범이고, 후자는 잠을 위해 만든 앨범으로, 수면 기간동안 계속 들을수 있도록 총 8시간의 러닝 타임을 가진 앨범 입니다.  비발디의 사계는 사실 누구나 알법한 클래식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이지만, 막스 리히터의 재해석된 사계를 들으시면 비슷한것 같지만 현대적인 무드가 더욱 짙게 느껴집니다. 기존의 구성 방식은 온데간데 없는채,  화성과 멜로디, 전개 등 모든 부분을 기존의 요소들로 완전히 재조립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도 전 음악이 가진 언어의 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데요, 어떤 뜻을 이루는 말이나 글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에 의해서 다르게 표현 됩니다.  즉 다시 말해, 어떻게 표현 되었던 상관없이 그것이 지닌 본질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한 본질, 정신이 먼저 갖추어 졌을때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표현하던 간에 중요하지 않게 되고, 또 진정한 문화 국가가 되기 위해선 작은 일이라도 정신을 담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셔터 아일랜드' 에도 삽입 되었던 그의 트랙 <On The Nature Of Daylight> 그의 곡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한데요, 사실 전 셔터 아일랜드 보다는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에 삽입되었을 때가 더 좋은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영화 역시 언어에 관련된 영화인데요, 극중에서 지구에 착륙한 외계인의 언어에 대해 연구하는 여성 언어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외계인의 언어가 음성이 아닌 이미지로 표현되는, 선험적인 형태를 지녔기 때문에 그것을 해독하고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 이영화는 단순히 외계인이 아닌 더욱 깊은 철학적 메세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보시길 추천해드립니다. 다시 본론으로 넘어와서, 막스 리히터를 포함한 현대 음악 작곡가들은 이렇게 영화 감독들과의 협업을 통하여 다방면으로 영화의 이해와 몰입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음악을 우리는 BGM, 다시 말해 백 그라운드 뮤직 이라고 부르는데, 전 이 어감이 조금은 불만족 스럽습니다. 영화와 음악이 모두 한데 어우러져 있는 것인데, 왜 영화 뒤에 깔려 있다는 것을 전제하로 하는지 말입니다. 


전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음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음악인것은 무엇이며, 음악이 아닌것은 무엇일까요? 전 이세상 모든 소리와, 언어와 시지각적 감각들 전체가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의 형태가 어떤것이 되었든, 우리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단순한 표면을 넘어 그안에 내재된 실체를 볼 줄 알아야만 합니다. 오늘은 영화를 통해 음악이 가질 수 있는 단순한 청각적 요소로서의 역할이 파괴됨과 동시에 감각의 위계에 대한 저항, 그리고 영화와 분리된 요소가 아닌 하나로 융합된 필수적 예술요소로써 자리매김 해야하며 권위있는 음악 아카데미들의 교육과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를 구축할 수 있게 된 배경 등을 철저히 연구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음악의 가능성을 더욱 넓고 깊게 펼쳐 나가야만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 그런데 저의 이런 바램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과연 어떤 음악이 나올까요? 열린 결말이니 상상은 여러분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뵙겠습니다!